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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석동에 꼭꼭 숨은 민족 문인 (沈薰) 선생 생가 터 찾다...흑석동 주민자치회 '흑석 연계 역사 알기' 2회 차
22일 효행 현장 효사정((孝思亭)에 이어, 인근에 있는 민족문학가 심훈(沈薰)선생 생가 터 방문

  • 최초노출 2020.10.30 21.38 | 최종수정 2020-10-30 오후 9:45:00

<'흑석동천주교성당' 출입구 안쪽에 있는 심훈 선생 생가터 표지석. 김영배 기자>


이날 한강변 제일 절경 효사정(孝思亭) 탐방을 마친 흑석동주민자치회(회장 양덕주) 산하 기획홍보분과(분과장 이옥연)가 인솔하는 역사탐방팀은 대로를 건너 흑석동 마을 서쪽 입구로 진입해 바로 인근에 있는 심훈선생 생가터로 향했다.

  

사람이 꼭 풍수지리학을 신봉하지 않더라도 인간사회에선 귀소본능 때문인지 그 뿌리인 ‘부모 및 생가 터’ 등을 중요하게 여긴다. 세종대왕의 종로 서촌, 인현동 충무공 생가터를 비롯해서, 박정희 구미, 김영삼 거제도, 김대중 하의도 등 생가터를 찾아 헤매고 발굴해 기념하는 것은 위인의 출생 및 출생지는 누구나 관심 갖게 되고 궁금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100여 년 전 우리나라에 이런 사람이 있었다. 구한말 혼란한 시기에 서울 흑석동에서 태어나 경성제일고보(현 경기고)를 나와 일본 유학 한 사람으로서, 애국 독립운동가에 시인이자 계몽소설가다. 동아·조선일보 기자에 영화감독인 다재다능했던 사람이다. 이만 하면 누구보다 뛰어난 사람이란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거기다가 변절 등 흠 없는 지순한 충혼충절의 애국자다.


<'흑석동천주교성당' . 사진 왼쪽 하단 부분에 심훈 선생 생가터 표지석이 있다. 김영배 기자>


1935년에는 이 사람이 쓴 농촌계몽소설 ‘상록수’가 동아일보 창간 15주년기념 현상소설에 당선되면서 크게 각광을 받기도 한 사람이다. 이 소설은 당시의 시대적 풍조였던 브나로드 운동을 남녀 주인공의 숭고한 애정을 통해 묘사한 작품으로서 오늘날에도 널리 읽히고 있다. 이 소설 상록수는 춘원 이광수의 소설 ‘흙’과 함께 양대 농촌계몽소설로 알려져 있다. 1981년 일본에서도 번역·간행돼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한다.  소설의 공간적 배경이 된 곳일 뿐인 안산시도 상록구와 상록수역이 있을 정도다.


이 외에도 <탈춤>이란 최초의 영화소설도 썼다. 애국시(愛國詩) <그날이 오면>도 써냈다. 수십 종의 소설도 신문에 연재했다.



<심훈 선생 사진. 사진 출처= 네이버, 김영배 기자>


누굴까. 그렇다. 그는 심훈(沈熏) 선생이다.

그는 1901년 서울 흑석동에서 태어나 성장하고 활동했으나, 1932년, 즉 사망 4년 전엔 일제 탄압을 피해 부모의 고향인 충남도 당진(당진시 송악읍 부곡리)으로 낙향해 살았다. 그곳에 필경사(筆耕舍)란 집을 짓고 많은 문학 할동을 했다. 조선중앙일보에 <직녀성>을 연재해 원고료로 집을 지었다고 한다. 불후의 명작 상록수도 여기서 썼다. 둘째와 셋째 아들도 이곳서 얻었다. 문학산실에다 자식산실인 셈이다. 지금 이 집은 충남기념물 제 107호로 관리되고 있다.


사단법인 심훈선생기념사업회도 있다. 심훈 문학상도 제정해 시상하고 있다. 올해 제 7회 문학대상에 정지아 작가의 <검은방>, 장류진 작가의 <도쿄의 마야>가 공동 수상했다. 제24회 심훈문학상은 도재경 소설가와 최세윤 시인이 차지했다. 지난 9월 중순에는 타계 84주년 기념식도 있었다.


< 심훈 선생 불후의 명작 소설 상록수 책. 사진출처= 네이버, 글 김영배 기자>


그럼 그가 탄생하고 성장기에 생활했던 곳인 이웃동네 흑석동이라고 하는데 어디쯤에 서 태어나 성장했을까 몹시 궁금했다. 지난 22일 청명한 가을날 흑석동 주민자치회 위원으로 구성된 탐사팀을 동행해 그 지점을 찾아 나섰다.

그곳은 흑석동 186번지. ‘천주교흑석동성당’ 안에 있었다. 이 성당은 1954년 5월에 노기남 주교에 의해 건립됐다. 앞에는 한강 뒤로는 서달산 줄기가 있는 배산임수형 구릉지에 지어진 건물이다. 120년 가까이 되는 시절에 살다가 이사간 집터를 어떻게 용하게 찾아내 표지석을 세울 수 있었는지 감탄스럽다. 관할 동작구청이 고맙게 느껴진다.


만일 그가 36세로 요절하지 않고 춘원처럼 좀 더 오래 살았더라면 후손에게 좋은 문학작품이나 영화를 얼마나 많이 남겨줬겠는가 하는 생각에 너무도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 심훈 선생 의 시(詩), 가(歌), 수필집  '그날이 오면'  책자.  이 책은 원래 1930년 3월 1일에 냈으나, 일제의 검열로 인해 출간을 못하고 해방후인 별세한 지 13년 후인 1949년에야 세상에 나오게 됐다. 사진출처= 네이버, 글 김영배 기자>


심훈 선생 생가터 지근에 한강변 절경인 효사정(孝思亭)이 있다. 자고로 산천정기와 풍광명미해야 인물을 탄생시킨다고 한다. 강변 승경과  산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이곳 흑석동에서  애국자이자 최고의 문인 심훈이 태어난 것이다.


심훈, 그는 ‘동방의 애인’, ‘불사조’ 등 두 번에 걸친 연재 중단사건과 애국시 ‘그날이 오면’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작품에는 강한 민족의식이 담겨 있다. ‘영원의 미소’에는 가난한 인텔리의 계급적 저항의식, 식민지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비판정신, 그리고 귀농 의지가 잘 그려져 있으다. 대표작 「상록수」에서는 젊은이들의 희생적인 농촌사업을 통해 강한 휴머니즘과 저항의식을 고취시킨다.


<심훈 선생 시비, 생가터 건너편 한강변 절벽 위 효사정 가는 입구에 세워져 있다. 김영배 기자>


행동적이고 저항적인 지성인이었던 그의 작품들에는 민족주의와 계급적 저항의식 및 휴머니즘이 기본정신으로 관통하고 있다. 특히, 농민계몽문학에서 이후의 리얼리즘에 입각한 본격적인 농민문학의 장을 여는 데 크게 공헌한 작가로서 의의를 지닌다.


심훈 선생 생가터는 9호선 흑석역에서 동양중학교 방향으로 100미터 거리에 있다. 시내버스는 간선 151, 752 및 지선 5511,5517,5524 등을 이용 가능하다.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은 덤으로 자연히 인근 한강 절경 효사정(孝思亭) 과 중앙대  교정에 있는 의혈탑을 비롯해서 타임캡슐 매립 연못 및 청룡상 등도 구경할 수 있다.  후회없는 일석삼조가 된다.

[심훈(沈熏) 약기]

본관은 청송(靑松)으로 본명은 대섭(大燮), 호는 해풍(海風)이다.

1901년 심상정의 3남 1녀 중 3남으로 서울 노량진(흑석동)에서 태어나 1915년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경기고)에 입학한 뒤 1917 년 조선 왕족 이해영(李海暎)과 혼인했다.

1919년 3·1운동에 참여해 체포·투옥됐다. 이후 퇴학 당해 4개 월 간 복역했다. 출옥 후 1923년 중국 항주 절강대학 국문학과를 중퇴하고 귀국했다.

귀국 이듬해 부인과 이혼했다. 동아일보사에 입사해 기자 생활시 시와 소설을 썼다. 1926년 동아일보에 ‘영화소설 탈춤’을 연재한 것이 계기가 돼 영화계에 투신했다. 그 이듬해에 일본으로 건너 가 영화를 공부하고 돌아와 ‘먼동이 틀 때’를 원작·각색·감독했다.

1928년 조선일보사 기자로  활동하면서 다수의 소설 연재를 하면서 애국시 ‘그날이 오면’을 발표했다. 1931년에 ‘불사조(不死鳥)’를, 1933년에는 ‘조선중앙일보’에 ‘영원의 미소’와 1934년 ‘직녀성’ 등을 연재하기도 했다.

1935년에는 유명한 농촌계몽소설 ‘상록수’가 동아일보 창간 15 주년 기념 현상소설에 당선되면서 크게 각광을 받았다. 1936년, 젊은 비교적 나이인 36세에 장티푸스로 사망했다.

* 출처 네이버


< 심훈 선생  동상, 생가터 건너편 한강변 절벽위 효사정 가는 입구에 세워져 있다. 김영배 기자>


(다음 주엔 3회 차 연재(민주항쟁의 산 역사 중앙대 의협탑)로 이어집니다)

주필실 김영배 주필 겸 상임위원장 kimyb123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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