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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위대한 장군은 외롭지 않다..초대 주월사령관 '채명신 장군' 묘소, 현충일 추모 인파 가득
유일하게 병사묘역에 자진해서 묻힌 채 장군의 숭고한 전우애에 가슴 뭉클

  • 최초노출 2019.06.08 11.04 | 최종수정 2019-06-08 오후 1:42:38


서울 동작구 흑석동 '국립서울현충원' 초입 병사 2묘역에 있는 고 채명신 장군 묘소(묘비). 2019년 현충일에도 가장 많은 향화가 모였다. 장군의 묘비 앞에는 전국에서 온 수백 명의 참배객이 종일 자리를 따나지 않았다. 그들은 장군의 뜨거운 전우애에 감사를 표하고 함께했다. 김영배 기자.


온 국민이 다알다시피 주월한국군 초대 사령관은 채명신 장군이다. 그는 파월 임무를 마치고, 박정희 정권시절 육군중장으로 전역했다.



당시 박정희의 ‘유신 정치’를 면전에서 직언으로 반대 후 전역한 것이다. 그저 “예스! 지당하옵니다” 한 번이면 육군대장도 장관도 예약되다시피 한 상황이었지만, 그는 상관에게 충언했다. ‘그러면 안 될뿐더러 각하와 국민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 될 거라고..


그의 충언대로 박의 인생도 흘러가 결국 정의를 부르짖는 심복의 총탄에 소리없이 사라져 갔다. 지금 현재 채 장군은 장군 중 유일하게 국립서울현충원 사병 묘역(2구역 초입)에 묻혀 있다. 묘소 면적은 비록 박의 천분의 일에도 못 되나, 미명은 우뚝해 만고에 찬연할 것이다. 사시사철 국민의 가장 많은 참배와 향화를 받는 사람도 채 장군이다.

 
채 장군은 황해도 곡산출신으로서 북한의 적화통일 야욕을 우려해 박정희의 5·16군사쿠테타에 참여했다. 그러나 정치에 참여하거나 권력을 탐하지도 않았다. 박의 장기집권엔 반대했고, 일본군 출신의 발호도 제어했다. 일본군 장교 출신 백선엽의 국군 원수(元帥) 추대를 막은 일은 유명하다. 당시 쿠테타 참여자가 하나같이 권력에 탐닉해 군복을 벗고 우루루 정치에 나섰으나, 그는 그러지 않고 군에 남아 초지일관 군인의 도리로 꿋꿋이 나라를 지켰다.


죽어서도 월남 전선에서 생사고락을 같이 한 용사들과 함께하고자 소망한 장군. 병사 묘역에 자진해 묻힌 유일한 장군. 위대한 전쟁 영웅 채명신 장군은 외롭지 않다. 그는 죽어도 장군이다. 저승에서도 수만 병력의 옹위를 받는 유일한 불사의 장군이다. 사람이 죽어서 묻히는 곳이 현충원이고, 다른 사람은 다 죽었다 해도 채 장군은 살아 있다. 그는 힘이 있다. 분명. 불멸.

2019년 현충일에 채 장군 묘비 앞에 모인 추모 인파. 무더운 날씨에도 흩어질 줄을 몰랐다. 김영배 기자.



위대한 장군은 실행으로 말한다. 병사와 생사고락을 실천한 유일한 장군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나를 따르라!." 미군 지휘관들은 늘 말한다. "내가 젤 먼저 사지로 들어가고 맨 나중에 나오겠다" 그런 지휘관이 있기에 병사가 감명받아 사지로 자진 돌격한다. 작전은 성공하고 그들의 조국 미국은 세계의 지도국이 됐다.



지휘관은 솔선수범이 중요하다. 손자병법에도 가여지생가여지사(可與之生可與之生死)!가 용병의 핵심임을 말한다. 더불어 살고 더불어 죽는다는 말이다. 전우란 위대한 이름 앞엔 부귀도, 권력도, 명성도 한낱 초개다. 인생이 살아 백년이 드물건만, 지록위마에 복종하면서 아득바득 권력과 부귀에 목매는 부끄러운 장군에게 그는 뜨거운 귀감이 됐다. 죽어 천년을 갈 그 이름 채.명.신.



2019년 6월 6일. 흐린 날 서울 현충원 그의 묘역엔 구름 같은 추모객이 몰려 종일 묘역을 지킨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우리 사령관. 잊지 못한다는 노병의 눈물들. 그리고 감사.



지난 세월을 아는 노(老) 기자도 가슴 뭉클하다. 위대한 장군은 하나라도 있다. 없지 않다는 게 이 부패타락 망종 시대를 살면서 그나마 행복하다.


논설실 김영배 논설위원장 겸 상임고문 kimyb123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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