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남 기자의 충효마을 탐사] 서울 동작구는 어떻게 전국 제일 충효의 고장 됐나?](/storage/효사정-최.jpg)
- [최수남 기자의 충효마을 탐사] 서울 동작구는 어떻게 전국 제일 충효의 고장 됐나?
- <지난 18일, 플로깅 겸해 찾은 이웃 마을 흑석동 소재 효사정. 한강 변 절벽 꼭대기 위에 지어 날개 지붕이 날렵해 창공으로 훨훨 비상할 것 같은 느낌을 준다(사진 제공= 사당3동 주민자치회 사무국), 최수남 기자>[서울 동작구는 충효의 고장으로 전국에 널리 알려져 있다. 어떤 사유일까?우선 충(忠)에는 <국립 서울현충원>과6·25때 한강 탈환 격전지라 세운<학도의용병현충비>가 있다. 여기에 더해만고충절 표상인 <사육신공원>도있다. 효(孝)는 조선 초기 천하 효자 노한(盧閈) 대감이 살았던 사적인 <효사정(孝思亭)> 정자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곳이니 만큼 명실공히 전국 제일 충효의 고장이 아닐 수 없다. 지난 18일, 본지 최수남 논설위원이 이 유서 깊은 명소 효사정과 이 동네 흑석동 출신 개화기 시인이자 소설가인 심훈 선생 흔적을 찾아 나섰다...편집자 글] 효사정 구 터는 세종 조에 한성 부윤과 우의정을 지낸 노한(盧閈) 대감 (좌의정 민제의 사위로 태종 이방원과는 동서지간)의 별서(別墅) 자리다.노 대감의 시호는 공숙공이며, 자는 유린이다. 노 대감이 모친을 여의고 3년간 시묘를 했던 자리에 정자를 짓고, 북쪽 개성에 있는 아버님 산소를 바라보며 추모했다는 곳으로 알려졌다. <효사정을 오르내리는 길은 동편과 서편 양쪽에 나 있다. 동편은 흑석동 쪽에서진입하는데 경사가 험해 데크계단을 설치했다(아래 사진). 서편은 노량진/한강대교 방향에서 진입한다. 정문 격으로 평탄해 진입이 용이하다. 심훈 문학길과 학도의용병현충비도 이곳에 있다. (사진 제공 = 편집국), 최수남 기자>서울 지하철 9호선 흑석역 1번 출구로 나가면 큰 길가 오른쪽 방향으로 맞닥뜨리는 언덕배기 꼭대기에 효사정이 있다. 현재는 당시 모습도 아니고 위치도 원래 있던 곳과는 좀 다른 곳이라고 말 하지만, 풍광은 여전히 아름답다. 누구도 부인 못할 가히 일품경이다. 공원 오가는 길에는 이 마을 출신 시인이자 소설가인 심훈 선생을 추모하는 여러 개의 석비도 있다. 문학 공원길에 곱게 세워진 작품 비석에서 그의 작품 세계를 맘껏 느껴 볼 수 있다. 지금의 신축 효사정은 1993년에 한강변 흑석동 절벽위에 신축된 정각이다. 북쪽 바로 아래가 올림픽대로와 한강이다. 용산과 남산, 멀리 북한산, 마포 등 전경이 보여 탁 트인 시야를 훤하게 밝혀주는 곳이다. 위치나 연고를 비롯해 새날개처럼 날렵한 정자 지붕 건축미가 우리 민족의 역사· 문화적 가치를 자랑할 만큼 잘 보여 준다. 원래 이곳은 서울의 우수한 조망 명소로 지정될 만큼 풍광이 뛰어나지만, 깍아지른 절벽으로 지대가 높아 위험하고 외진 탓에 일반인 접근이 쉽잖아 인적이 드물었다. 이를 우려한 관할 동작구청이 2018년에 개선 공사를 해 접근성을 크게 호전시켰다. 쉬운 진입을 위해 연결로와 엘리베이터도 개설했다. <심훈 선생 동상과 시비. 효사정 서편 진입로에 있다. 최수남 기자>이때 이곳을 주변의 풍광과 함께 이야기와 사색이 흐르는 문화공간으로 특별히 조성했다. 아울러 심훈 문학비와 안내판을 설치해 지역 특색을 살린 문학길도 조성했다. 사방을 관망할 수 있는 전망대와 산책로를 테크로 만들어 걷기에 좋고 도심 속 쉼터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전통 문화발전 및 친시민적 유효적절한 사업으로 생각된다. 모든 서울 시민과 전 국민 누구나 문화 역사와 자연을 쉽게 누릴 수 있도록 만들어 찾아오는 관람객이 걷고, 쉬어가고 싶은 아름다운 장소로 변모했다. 동작구에 오래 거주한 마을지도자인 한상락(80) 전 사당3동 주민자치위원회장은 “서울 한강을 끼고 있는 정자(亭子)중 가장 아름답다”고 설명했다. 압구정이나 망원정도 이름이 났지만 효사정도 그 못지 않다. 이곳에 시비로 새겨진 심훈 선생은 1901년 9월, 지금 이 동네인 흑석동에서 태어나 1926년 동아일보에 탈춤을 연재하면서 알려졌다. 최고의 걸작 상록수는 교과서에도 실릴 정도로 유명하다. 필자도 청소년기에 읽었던 소설이라 기억이 아련하지만, 그 내용은 1935년 1월 경기도 반월면 샘골에서 농촌 계몽활동을 펴다 요절한 최용신의 이야기를 소설로 쓴 것으로 1935년 동아일보 “창간 15주년 장편 소설부문 특별 공모”당선작이다. <효사정에서 직경 100미터 거리인 흑석동성당 입구에 있는 심훈 선생 생가터 표지석(사진제공 = 편집국), 최수남 기자>1935년 9월 10일~1936년 2월 15일까지 연재되어 엄청난 호응을 얻은 바 있다. 그는 시인, 소설가, 영화인, 영화 저널가이기도 했다. 선생은 상록수의 영화화를 애쓰다가 1936년 9월 16일 향년 36세의 안타까운 젊은 나이에 장티푸스 질병으로 세상을 떠나 주위를 슬프게 했다. 그의 고향 충남 당진에는 생을 마감할 때까지의 산 연도별 기록물과 그의 작품들이 길을 따라 길게 펼쳐져 있음도 대단한 기록물이 정리되어 있다. 그는 진리와 진실 앞에 참으로 행동적이고 저항적인 지성인이었다. 작품들마다 민족주의와 계급적 저항의식 및 휴머니즘이 기본 정신을 이루고 있다. 특히 농민 계몽문학에서 리얼리즘에 입각한 본격적인 농민문학의 장을 여는데 누구보다 더 크게 공헌한 작가라 생각된다. 심훈을 기리는 문학길에서 조국의 광복에 대한 염원이 담긴 그의 대표 시 “그날이 오면”을 문학비 앞에서 잠시 길을 멈추고 감상하며 그날의 역사를 다시금 되새겨 봤다. <효사정 입구 심훈 문학길에 있는 학도의용병현충비. 6·25 때 전사한 학도의용병의 애절한 슬픔을 잊지 않고 고이 간직하고자 전후 5년 만에 한강탈환전 격전지인 이곳에 우뚝 세웠다. (사진 제공= 편집국), 최수남 기자>이 효사정 길에는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조국과 민족을 위해 몸 바친 학도의용군들의 높은 뜻을 기리고 이를 되새기기 위해 지난 1955년 6월 25일 건립한 ‘학도의용병현충비’가 우뚝 서있다. 비의 상단에는 세로로 길게 비명(碑銘)이 새겨져 있다. 당시 치열했던 전투에 참가한 학도의용병의 이름이 새겨진 이 비를 다시 가슴 바탕에 새기며 애도의 묵념하는 시간을 가지며 애국심을 다졌다. 한편, 이날 취재에는 사당3동 주민자치회(회장 김종완) 일부 회원과 동행해 취재해 각자의 효심을 되새기면서 플로깅도 겸했다. 참가 회원은 쓰레기봉투와 휴대용 집개를 미리 준비해 이웃 동네인 흑석동 효사정으로 이동했다. 둘러본 효사정 공원은 다른 곳 보다는 깨끗한 편이나, 아직도 몰지각한 사람이 있어 담배꽁초와 휴지를 아무렇게나 투기해 놔 실망이 컸다. 어느 사람은 담배꽁초와 휴지, 비닐, 종이 포장지 등을 생각 없이 마구 던져 버리고 누구는 쨍쨍한 햇볕 아래서 나무더미 속을 뒤져서 찾아 줍는 상황이다. 모두가 함께 사용하는 공공기물과 자연공원이기에 함께 가꾸고 정돈해야 하는 시민정신(市民精神)이 언제나 필요하다. 요즘 우리 주변엔 흔히 ‘깨시민’이란 말이 유행하지만, 그런 정치 뿐만 아니라 생활 속의 민주화 추구 및 참된 시민 정신이 더욱 절실해 보인다. ‘깨시민’ 못잖게 절실한‘참시민’ 상을 제안한다.<효사정에서 내려다 보이는 올림픽도로와 한강 건너 용산의 모습이 아련하다. 한강을 등지고 편히 쉬는 서울 시민 모습에서 이곳이 쉬기 좋은 절경임을 미루어 알만하다. 사진 제공= 편집국. 최수남 기자>
- 주필실/2022-06-27

- 예법 상실한 시대에도 한줄기 향기 내는 사람 있다...고 김진길 복싱감독 별세 4년 지나도 묘소 찾는 지인 있어 칭송 자자
- ▲ 경기 북부지역 파주 경묘공원에 잠든 세계가 인정한 최고의 스포츠지도자 중 일인인 고 '김진길' 복싱 감독 묘소.사진= 김 감독 추모회 제공, 글 김영배 기자.의(義). 올바른 길.의리(義理). 개인 간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충의(忠義). 나라 위해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인의(仁義). 천하 백성, 즉 인류 차원 정치·도의적으로 마땅히 지켜야할 사회적 도리. 이렇게 정의해 본다. 우리 사회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의리를 가장 소중한 가치로 여겼다. 최근 50년 전까지만 해도 의리란 단어가 크게 울림을 줬다. 필자의 20대 기준으로 그땐 영화도 정치도 다 의리를 소중히 했다. 그래야만 사회의 인정을 받는 시절이었다. 패거리 정치란 비난도 있었지만 독재압제 시절엔 이 의리로 무장하지 않았다면 이나라 민주화도 꽃피지 못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요즘은 어느새 의리란 단어가 사라졌다. 완전 소멸됐다. 낡은 구두처럼 초개처럼 팽개쳐 버리고 배신과 패역의 세상 됐다. 오직 이득영달 좇아 승자나 강자 되기만 바란다. 양보나 희생은 아예 없다. 군경조직 빼곤 국가위한 헌신도 없고 가르치지도 않을 뿐더러 모범도 드물다. 물질만능시대의 적나라한 표징이란 말도 있다. 그러나 그러나, 양력 임인년 1월 18일 오늘 기자단에 제보된 한 장의 사진이 이러한 판단을 완전 뒤짚히게 한다. 상당한 사건이다. ▲지난 16일(일요일) 경기 파주 경묘공원 소재 고 김진길 감독 묘소에서 헌작 참배하고 있는 김 감독의 후배 조은상 씨의 모습. 사진= 김 감독 추모회 제공, 글 김영배 기자.고 김진길. 이 사람은 한국 아니, 세계에 우뚝 선 걸출한 스포츠 감독이었다. 한국 3대 감독(트레이너)라는 미칭을 얻기도 했다. ‘축구 히딩크’ ‘마라톤 정봉주’, ‘복싱 김진길’이란 화려한 이름과 족적을 남긴 사람이다. 복싱 지도자 생활 50여 년 동안 수많은 챔피언을 길러내 챔피언 제조기로 통했다. 그의 문하에서 저 유명한 작은표범 유명우를 비롯해 김철호 지인진 등 기라성 같은 세계, 동양, 올림픽 복싱챔피언이 나왔기 때문이다. 88서울올림픽에서 복싱의 꽃인 헤비급 은메달리스트 백현만 선수를 키운 것도 그의 빛나는 업적이다. 이런 발군의 실적으로WBA(세계권투협회) 가 제정한 세계최우수트레이너에 두 번이나 뽑혀 국가 위상을 한껏 드높히기도 했다.그는 이런 업적도 업적이지만, 늘 주변 어려운 사람을 도울려고 노력했고, 특히 제자나 동료들과의 우애를 깊게 했다는 충후한 인간성이 더 돋보인다고 지인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평소 강골인 그도 ‘인사유명 인명재천’이란 자연법칙과 인생철칙은 벗어날 수 없었다. 지난 2018년 2월 17일 향년 77세로 별세해 경기북부 경묘공원에 영면하고 있다. 최근 노태우 전 대통령도 거기에 묻힌다고 알려진 곳이다. 또한 그는 정론 설파 국내 최대 기자단체인 '국민안전기자단' 박성옥 고문단장의 부군이기도 하다.그가 별세한 지 4년이 흘렀지만 후배· 지인· 제자 등은 아직도 그를 잊지 못하고 추모의 발걸음을 끊지 않고 있다. 올 설을 앞두고 지방 거주 지인까지 모여 경기 북부의 묘소를 찾아 성묘하는 한 장의 사진이 보는이의 가슴을 찡하게 한다. 친형제 한 가족도 이러기 어렵다는 걸 우린 잘 알고 있는 터이라 더욱 감탄스럽다. 고인과 지인의 생전 우정이 느껴지고 한결 돋보인다. 중국 전국시대나 일본 에도시대 같은 이 막장 패륜시대, 무도한 시절에도 한줄기 빛은 있고, 소똥 위나, 진흙탕에서도 한 떨기 꽃은 피는 법인가 보다. 금번 설명절 맞아 이런 인륜도리와 불변 의리 소식 접하면서 요즘 한국 사에게‘인간의 도리’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하는 좋은 계기가 될 것 같다.▲지난 16일(일요일) 경기 파주 경묘공원 소재 고 김진길 감독 묘소에서 참배하고 있는 김 감독의 후배 이대한 김병무 씨의 모습. 조은상 씨는 사진 촬영 중. 사진= 김 감독 추모회 제공, 글 김영배 기자.
- 주필실/2022-01-18

- 서울 사당3동 주민자치회, 올해 의제사업 '마을탐방' 행사 중 현충원 비석닦기 봉사 선행으로 이어져 귀감
- 13일 오후, 서울 사당3동 주민자치회 의제사업 '마을탐방' 행사에 참여한 주민과 가족 일동. 근래 신축한 거대한 건물인 사당종합체육관 앞에서 촬영. 최수남 기자.[서울은 서울형 주민자치가 잘 파종돼 뿌리내린 곳으로 알려졌다. 그 중에서도 동작구는 사육신묘와 국립서울현충원이 있는 충효의 고장이다. 이 공작포란형의 새 날개속 품 같은 명당지 서울현충원을 둘러싸고 있는 3개의 마을이 있으니 서쪽으로 흑석동이고, 동쪽으론 상도동, 남쪽으론 사당3동이다. 산 지형상 사당3동이 현충원을 가장 길게 위요(圍繞)하고 있다. 이 사당3동 마을은 서울형 주민자치의 선진지로 평가 받는 곳이라 언론의 관심과 조명을 받기도 한다. 이 주민자치회의 올해 의제사업 하나인 ‘마을탐방’ 사업을 전국 최대 규모인 ‘국민안전기자단’ 고문이자 한국 안전정론지 ‘세이프데이뉴스’ 논설위원인 최수남 기자의 글로 싣는다=편집자 주] 지난 13일 오후, 동작 사당3동 성희숙 동장과 주민자치회(회장 김종완)는 마을안전분과위원회 주관으로 “사당골 동네 한바퀴”의제를 수행했다. 이 행사는 가족으로 구성된 16명의 인원이 참여해 2시간 여 동안 진행됐다. 이들은 먼저 마을에 안전 해치는 장애물은 없는지? 주민 관심사항은 뭐가 있는지, 우리 마을에 우리도 모르는 또 어떤 내용이 존재한 것인지에 관해 사전답사도 했다. 13일 오후, 서울 사당3동 주민자치회 의제사업 '마을탐방' 행사에서 삼일공원 건립유래에 관해 김학규 동장문화연구소장으로부터 설명 듣고 있는 참여 주민과 가족. 김 소장의 상세한 설명으로 우리마을 제대로 알기에 큰도움됐다고 이구동성 말해. 최수남 기자.관내 거주하는 향토사학 연구가인 김학규 동작역사문화연구 소장의 안내와 해설도 받았다. 관내 청소년문화의집 뜰에 모여 함께 토론하면서 즐겁게 탐방을 시작했다. 인솔하는 해설사가 준비한 내용은 광범위하고 자세했으나, 우리에게 주어진 2시간은 너무나 짧았었다. 그중에 몇 가지만 세부적으로 살펴본다. ▲ ‘가마니골’ 터삼광교회 주변의 사당3동 산24번지 판자촌은 이른바 “사당동 가마니골” 사건으로 재개발이 처음 시작할 때 온갖 어려움도 많아서 세입자대책위원회가 구성됐고, 전쟁 같이 치열한 재산싸움이 벌어진 곳으로 유명하다. 그런 후에 현재의 대림아파트가 들어섰다. 물론 새롭게 입주해 온 주민들은 잘 모르는 일일 것이다. 이 가마니골은 1981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테레사 수녀가 “가난한 자의 어머니”처럼 방문한 곳이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을 비롯해 1987년 YS와 DJ가 방문했다고 전해 온다. 가마니촌에 거처를 가진 “소나기”의 황순원(1915~2000)작가를 비롯한 황찬영(황순원 부친, 독립선언서 배포)과 황동규(황순원 아들, 서울대 명예교수)의 생애도 우리가 조명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 ‘삼일공원’연고없는 이곳에 삼일공원이 들어선 사연과 유래는 독특했다. 여기엔 “삼일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진 않았고, 그저 얕은 야산과 분지로 이루어진 지역이다. 이에 서울지역에는 탑골(구. 파고다)공원과 서대문형무소를 제외하면 제대로 된 삼일운동 기념 공원이 없음을 안타깝게 여긴 독립운동가 최은희(1904~1984) 기자가 제안해 만들어진 곳이다. 최 기자는 1967.4.15일자 동아일보에 “아직도 독립공원이 없는 게 좀 부끄럽지 않는가!”라며 기고문을 발표함에 기인해 이를 본 박정희 전 대통령이 3만 여 평의 국유지를 삼일공원 부지로 선정·건립해 오늘에 이른다고 전해 온다. 지난 2015년 까지는 독립공원부지 마당엔 달랑 “라이온즈클럽” 횃불탑만 건립되어 있음을 안따깝게 여긴 이 지역 지도자 한상락, 김종완 씨 등 역대 주민자치위원장이 중심 돼 구비와 국비 등을 타내고, 나경원 당시 국회의원 등의 협력에 힘입은 모금 운동으로 오늘의 유관순 열사의 음각 부조상과 독립선언문 석비, 그리고 초대형 태극기 게양대, 독립기념 타일부착 등을 준공하게 됐다. 그러나 아직도 부족한 부분이 많다. 기념관이나 전시실 등 건물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13일 오후, 서울 사당3동 주민자치회 의제사업 '마을탐방' 행사에 참여한 김종완 주민자치회장이 대표로 무명용사탑에 분향 묵념하고 있다. 최수남 기자. ▲ ‘서울현충원’이곳의 4명 전직 국가원수와 독립유공자묘역은 후세가 특별히 유념해야 할 중요한 곳이다. 정치적 견해와 입장 따라 평가가 엇갈리긴 하나 국가원수는 다 나름대로 나라발전 기여한 부분이 있고 공과가 있는 것이다. △초대 우암 이승만 전 대통령은 6.25의 어려운 국난을 승공의 일념으로 북진통일을 외쳐 한미동맹을 탄생케 해 오늘의 안보를 구축했다 △ 박정희 전 대통령은 가난과 헐벗음에서 풍요로운 대한민국이 되도록 조국근대화를 달성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대도무문의 정신과 금융실명제, 민주화 정착에 불후의 업적을 이뤘다 △ 김대중 대통령의 경천애인 사상과 인권확장 속에 평화를 위해 헌신함은 후세인에게 생활의 큰 좌표가 되리라 여긴다. 오늘날의 번영한 대한민국, 튼튼한 안보, 공식적으로 선진국 진입한 것은 이들 지도자의 헌신이 컷음을 망각하거나 가벼이 여겨선 안 될 것이다. 정치적으로 다소의 아픈 부분 있다고 해서 모든 걸 다 부정·배척하게 되면 후손에게 물려줄 역사도 교훈도 없는 나라가 된다. 서울현충원에는 민족의 얼이 서리고 조국과 영원히 함께하는 17만2천여 명의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이 모셔진 곳이다. 창조주의 섭리 아래 해와 달과 함께 보호되리라 믿는다. 어느 나라 어디든 현충원은 주변에 거주하는 주민에겐 살아있는 근현대사의 교육장이다. 나라 사랑 실천과 애국정신 다듬기 위해 수시로 묘역순례가 필요하다고 본다. 탐방 시에는 간편한 수건을 휴대해 독립유공자 묘역부터 비석을 닦아준다면 의미가 더욱 크겠다. 일행은 6회의 탐방과 순례를 마치고 초겨을 날씨속에서 2회에 걸쳐 임시정부 요인 묘역 비석을 닦았다. 이런 작은 선행은 자녀들에겐 좋은 충효의 본보기가 되리라 본다. 제반 여건이 불비한 난관속에서도 올해 의제사업을 100프로 달성한 사당3동은 기 수립된 내년 의제사업 세부실행을 구상중이다. 실은 최근 언론에 보도된 바와 같이 서울시장 교체 이후 시민단체 관련 예산 대폭 삭감 등 시정 진통 및 급변으로 주민자차사업이 위축될 위기에 처했다. 이런 우려 속에서도 내년엔 더욱 내실 있는 도약을 꿈꾸는 이들의 모습에 감명 받는다.13일 오후, 서울 사당3동 주민자치회 의제사업 '마을탐방' 행사 일환인 서울현충원 참배 및 비석닦기 행사에 참여한 임정희 간사의 손길이 정성스럽다. 최수남 기자.
- 주필실/2021-11-18

- 국내 중견 미술작가 단체 <붓사랑> 회원 제2회 그룹전 열려...역작 총 59점 전시·판매 중
- 국내 중견 화가 단체 <붓사랑> 회원 제2회 그룹전 안내 포스터. 김영배 기자.끝나지 않는 코로나시대, 위험 무릅쓰고서라도 해수욕장 등 피서가는 사람 있지만, 한여름 피서를 도심지 화랑가에서 보내는 사람도 많다. 답답한 시민 속 풀어주는 미술작품 전시회 소식 있어 주목받고 있다. 대한민국 한복판 서울, 서울 한복판 종로, 종로 한복판 인사동, 인사동 한복판에 개화기 역사의 현장 터에 건립된<경인미술관(3관)>에서 <붓사랑> 회원인 최문호·김대현 등 중견 화가 32인 작품전이 열리고 있다. 이 전시회에는 주로 서양화인 수채화·아크릴화 등이 다수 전시돼 있다. 작품 종류는 꽃, 도시골목길, 시골산촌풍경, 인물화, 정물화, 토마토 사과 등 여름과일, 파꽃, 고양이, 닭, 부엉이 등 새 그림을 비롯해 다양한 소재를 그렸다. 물론 매화 등 정통 동양화와 추상성 동양화 작품도 있다. 구상· 반구상 작품 등 다양한 장르가 있다.서울 인사동 <경인미술관> 입구.조선조 말 철종임금 부마(영혜옹주 부군)로서 개화기에 유명했었던 금릉위 영효의 구 집터 중 잔여지550평에 자리잡은 너른 정원 있는 한옥전시장이다. 1800년대에 건축해 당시대 한양8대 가옥 중 하나로서2000평 대지였던 본채는 갑신정변 때 불타고,최근까지 잔존했던 사랑채를 남산 한옥촌에 기증 후 이곳엔 한옥을 다시 꾸몄다고 한다.경인미술관은1983년 경인(耕仁)이금홍 관장이 세워 지금까지 운영돼 오고 있다. 32인의 작가가 총 59점을 출품해 선보이는 이 제2차 붓사랑 회원전은 8년 전부터 결성된 인원이 3000명의 국내 큰 미술 작가 단체다. 이 전시회는 21일부터 27일까지 일주일 간 열린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반 관람이 가능하다. 관람 후 작품구매 희망 시는 작가에게 연락하면 된다. 붓사랑 리더인 최문호 작가는 2회의 개인전을 및 12회의 그룹전에 참여한 초대작가다. 그의 출품작 토마토 그림이 발군으로 탁월해 보인다. 한눈에 띄었다. 국내 중견 화가 단체 <붓사랑> 회원 제2회 그룹전 출품작 중 리더 최문호 작가의 토마토 그림이 눈길을 끈다. 김영배 기자.김대현 작가는 동양화 홍매화 2점을 출시했다. ‘매원(梅願)’, ‘유신(惟新)’이란 화제가 붙은 홍매화다. 경북도 영양·청송지역에서 활동하는 김 작가는 선비의 세가지 재주를 말하는 시서화(詩書畵)에 다 능해 삼절작가(三絶作家)로 불린다. 흔히 매화는 梅經寒苦發淸香(매경한고발청향)이란 말처럼 ‘매화는 추위를 겪고 나서야 맑은 향기를 낸다’고 해서 겨울을 연상하게 되나, 그림은 시와 철을 가리지 않으니, 여름철에 보는 매화작품도 일품이다. 이 단체 회원전은 매년 연례적으로 선보일 것으로 알려졌다. 전시회 첫날 만난 최문호(59) 붓사랑 리더는, “매년 회원 그룹전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출품작가는 위 최문호 김대현 작가를 비롯해 류흥권 박지영 양춘희 주창식 이상융 김미경 한기진 성도미 차연후 조윤준 방기숙 유은정 이종서 김진서 강경록 배명식 나혜미 최봉호 민현기 김경옥 이선영 장성례 정관하 전인순 박소민 김태용 오미현 장영아 박기순 최복이 작가 등이다. 국내 중견 화가 단체 <붓사랑> 회원 제2회 그룹전 출품작 가운데 김대현 작가의 매화 그림이 발군이다. 김 작가는 시서화(詩書畵) 삼절에 능통해 삼절작가로 알려졌다. 국민안전기자단 일원으로도 활약 중이다. 김영배 기자.올여름은 중견작가의 심혈 기우린 동서양화 그림도 보고 역사의 현장도 느껴보는 인사동 경인미술관행을 권한다. 이곳 경인미술관 터는 인사동의 숨은 골목에 있어서 행인 눈에는 잘 뛰지 않는다. 그러나 너무나 유명한 역사의 현장이자 도심에서 보기 드문 비경이다. 이곳 경인미술관은 조선조 말 철종임금 부마(영혜옹주 부군)로서 개화기에 유명했었던 금릉위 박영효의 집터 550평 대지의 너른 정원 있는 한옥전시장이다. 1800년대에 건축해 당시대 한양 8대 가옥 중 하나로서 2000평 대지였던 본채는 갑신정변 때 불타고, 최근까지 잔존했던 사랑채를 남산 한옥촌에 기증하고 이곳엔 다시 한옥을 꾸몄다고 한다. 인사동 뒷골목에 숨어 있어 50년 인사동 출입자도 잘 모르는 귀하게 숨은 비경이다. 지난1983년 경인(耕仁) 이금홍 관장이 세워 지금까지 운영돼 오고 있다.국내 중견 화가 단체 <붓사랑> 회원 제2회 그룹전 출품작. 김영배 기자.
- 주필실/2021-07-21
![[문화산책] 신선 사는 동천(洞天), 인왕산 아래는 백운동천 말고, 동천 또 있다..'누하동천'에 숨은 서예 작품](/storage/누하동천.jpg)
- [문화산책] 신선 사는 동천(洞天), 인왕산 아래는 백운동천 말고, 동천 또 있다..'누하동천'에 숨은 서예 작품
- 종로 누하동에 있는 청전 이상범 화백 가옥(국가등록문화재171호). 누하동천이란 현판과 뒤 배화여고 뜰에 심어진 회화나무 잎색갈에 맞춰 녹색 물감으로 써진 게 특이하다. 김영배 기자.▲동천(洞川)또는 동천(洞天)이란 말은?동천이란 말이 있다. 동천(洞川) 또는 동천(洞天)이라고 쓴다. 전자는 지리적 현상을, 후자는 정신·철학적 개념으로 칭하는 것이라고 보여 진다. 후자 동천(洞天)이란 동천복지(洞天福地)의 줄인 말로써 중국 도교에서 신선이 산다는 곳을 이름이다. 동굴이나 좁은 병속의 하늘과 같이 하나의 한정된 공간에도 우주를 압축 존재시킨다 생각에서 기인한 것으로 추정한다. 전북도 진안엔 전국에 유명한 백운동천(白雲洞川)이 있지만, 서울에도 한양 5대 경승 중 하나라고 하는 백운동천(白雲洞川·白雲洞天)이 있다. 인왕산 기슭에서 발원한 하천으로 영조의 잠저 터 창의문 부근에서 경복궁 옆 자하문로를 흘러 청계천으로 입수한다. 중랑천 하류로 흘러들어 뚝섬부근에서 종래는 한강으로 합수하는 것이 백운동천이다. 지금은 복개돼 육안으론 보이지 않는다. 청계천 원류격인 최상류 백운동천(白雲洞川)은 경치가 좋기로 유명했다고 전해 온다. 그러기에 가히 신선이 살만한 곳으로 비칭된 것 아니겠는가. 조선후기 한성부 역사지리를 기술한 한경지략(漢京識略)에는 백운동천수(白雲洞川水)로 기재돼 있어 그런지 각종 역사·문화 공식자료엔 죄다 동천(洞川)으로 기술돼 있지만, 선비와 문인은 동천(洞天)으로 쓰고 불렀다. 구한말 문신으로서 독립지사·외교가·한학 서예 등에 능통했던 동농(東農) 김가진(金嘉鎭)선생이 백운동 계곡에 새겼다는 ‘백운동천(白雲洞天)’이란 각자가 생생이 입증해 보여준다. 이 백운동천 상류 부근에 누하동이 있다. 부근에 있는 경복궁 경회루(慶會樓)의 아랫 동네란 뜻이다. 위는 당연 누상동이다. 경회루는 조선말까지 한성부 제일 높이라 한양이 훤히 다 내려다 보이던 곳이다. 누하동 인근엔 유명했던 사람이 살던 가옥이 많지만 그 중에 한국화가 청전 이상범 화백 가옥이 있다. 국가등록문화재 171호로 관리되고 있다.공주 출신 이상범 화백은 소시에 상경해 미술학교를 다닌 후 대성해 소정 변관식, 의재 허백련, 심산 노수현 등과 함께 근대 한국 산수화의 4대가로 알려져 있다. 1972년에 타계했다. 오늘은 그림 얘기가 아니고, 이곳에서 발견한 서예작품 2점이 특별히 눈에 띄어 이 두 작품만 추적해 봤다. ▲하나는 ‘청전(靑田)’이란 두글 자 액자다. 이상범의 아호를 쓴 것이다. 최대의 예우 작품이 아닐까 한다. 색이 진황색으로 바란 것을 보면 상당히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작가는 구한말에 활동하던 <우하(又荷) 민형식(閔衡植)>이다. 시기가 언젠지는 미상인 채 간결하게 어느 봄에 썼다고만 돼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에 의하면 민형식은 1875년 생으로 해방 직후인 1947에 사망했다. 조선 말기에서 근대기에 활동한 문신이자 서화가다. 자는 공윤(公允), 호는 우하(又荷), 본관은 여흥(驪興)이다. 서울 출생으로 민씨 척족정권의 대표적 인물인 민영준(閔泳駿)에게 양자로 출계된 사람이다. 1891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평안도 관찰사 · 법부협판 · 학부협판 등을 역임했다. 많은 관직을 거쳐 신민회(新民會) 회원이 돼 독립운동을 돕고, 반일운동에도 가담했다. 민족운동지 발행자금 및 각종 학회·학교에 기부금을 희사하는 등 민족운동을 지원하기도 하다가 말년엔 돌연 친일행적을 보여 친일인명사전에도 올라있으나, 시·서에 능했다. 글씨는 안진경(顔眞卿)체와 특히 행서를 잘 썼다고 한다. 천학비재인 졸부 기자의 눈에도 이 작품에 대단한 필력이 서슬 퍼렇게 살아 움직이고 있음을 느껴진다. 그는 1925년부터 1927년까지 정대유 · 오세창 · 김돈희 · 안종원 · 이도영·고희동 등의 서화가들과 시사(詩社)를 결성하고 시·서·화를 통한 교류를 활발히 했다고 하니 그 무렵 또는 직후에 이상범 화백과도 친교가 있어 이 작품이 전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구한말 서화에 능통했던 권력층 민형식이 1900년대 전반기에 청전에게 써준 것으로 추정되는 서예 작품. 김영배 기자. ▲또 하나는 소전(素荃) 손재형(孫在馨)의 작품 액자다. 소전이 원래 전서체 대가라 전서로 써져서 문외자는 해독이 쉽지 않다. 이른바 한문에서 유명한 문구인 ‘梅經寒苦(매경한고)’다. 梅經寒苦發淸香(매경한고발청향). 매화는 추위를 겪고 나서야 맑은 향기를 낸다는 뜻으로 계자서나 수양 글귀로 널리 통용된다. 앞의 네 글자만 짤라서 매경한고로 써도 된다. 이 말은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시진핑에게 덕담으로 쓰기도 했다. 비온 뒤 땅이 굳어진단 말과도 상통한다고 보겠다.원래는人逢艱難顯其節(인봉간난현기절: 사람은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기질이 들어난다)이란 댓구와 같이 쓰인다. 이 소전의 작품은 작은 글씨와 낙관 부분을 잘 봐야 한다. 친동생 긍전(肯荃) 손재복(孫在馨)도 탁월한 서예가로서 똑 같은 문구, 흡사한 필법의 작품을 많이 남겼기 때문이다. 이 글귀 작품도 아주 똑 같은 게 더러 있다. 낙관부분에 있는 서명소전과 긍전을 잘 읽어야 한다. 작은 글씨를 보면 <청전화백 아형 방가 신정 신축 원조 서어봉래제일선경 남창하 분매향처 소전>이라 쓰여 있다. 올해가 신축년이니 딱 61년차 환갑 된 작품이라 의의가 더 있다. 봉래제일선경은 진도에 있는 소전의 서실 별칭이다. 진시황이 찾던 신선마을 동쪽 봉래산이 진도일대란 말도 있나 보다. 아니면 차용했을 수도. 동생 손재복은 봉래제2선경이라고 쓰기도 했다. 방가는 전문가 또는 대가란 뜻이다. 청전이 1987년생이고, 소전이 1903년 생이니 청전이 6년 연상이다. 아형 인형 등으로 써도 무방하다. 소전. 소전의 명성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진도사람으로 서울에 와 사계 거목으로 성장, 각종 미술대회를 주도하고 소전체를 개발해 명작을 많이 남겼다. 박정희의 서예를 지도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유명 잡지 ‘샘터’, ‘월간문학’ 등의 제호도 썼다. 주요 작품으론 <이충무공동상명><사육신묘비문><이충무공벽파진전첩비문> 등이 있다. 소전이 일본에까지 찾아가 일인으로부터 추사의 세한도를 찾아온 일화는 불후의 애국행위로 찬양받는다. 그에게 감명 받은 일인 부자(父子)가 무려 15000점의 추사 유물을 한국에 넘겨줘 과천에 추사 박물관이 조성되게 하기도 했다니 그 과정과 지성감천의 정신 알만하다. 8대 국회의원 도 지냈으나, 결국은 정치 실패로 인해 명품 다수를 민간에 매매했다고 하니 인간적 아쉬움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진도에 그의 미술관이 있다. 소전은 청전보다 9년 뒤인 1981년에 타계했다. ▲한국의 유명 서예가는?서예는 조상들이 즐겨하던 예술문화 활동이다. 신라-고려 시절엔 김생, 탄연, 최우, 유신 등 신품4현이 있었다. 최우(최이)는 무신정권 2대 종주인데도 문인 기질이 강했던 같다. 조선시대는 전기간 통틀어 4대 명필로 <한호 석봉>, <안평대군 이용>, <자암 김구>, <봉래 양사언>이 있다. 후기 명필가로 <추사 김정희>, <눌인 조광진>, <창암 이삼만>, <원교 이광사> 등이 있다.구한말 오경석 정학교 박태영 강위 홍승현 지운영 지창한 현채 김옥균 박영효 안중식 김가진 등을 비롯해 근대엔 소전 손재형, 일중 김충현, 갈물 이철경등이 있다. 소전의 제자 그룹으로 원곡 김기승,평보 서희환,장전 하남호, 서봉 김사달, 학남 정환섭, 경암 김상필, 금봉 박행보, 우죽 양진니 등이 득명했다고 한다.특이한 건 한국엔 형제자매 서예가가 많다. 위 <소전 손재형-긍전손재복> 형제에다, <일중김충현-여초 김응현> 형제가 있고, <갈물 이철경-꽃뜰 이미경> 자매 등이 크게 일가를 이룬 유명인이다. 타고난 천부에다 형과 언니가 하니 따라서 한 걸로 보인다. ▲정치인의 서예 활용은?근대 유명 정치인나 명사들은 서예를 정치 연출 도구로도 활동했다. 안중근 의사의 옥중 필적은 다수가 현존해 세계적으로도 알려졌다. 상당수 일인 간수들이 이 위대한 인물을 존경하는 마음에서 간청해 필적을 받아 가보로 전해지고 있다. 특히 '見利思義 見危授命(견이사의 견위수명)', '一日不讀書口中生荊棘(일일불독서구중생형극)' 등이 널리 알려졌다.김구 선생 글씨도 많다. 독립군 군자금 모금에도 활용된 것으로 보인다. 손떨림에 따른 충체(蟲體)로 유명하다.이승만도 작품을 더러 남겼다.붓을 눕혀서 쓰는 노봉법(露鋒法)이란 일본 서체라고 알려졌다.박정희도 ‘기술혁명’, '자조협동', '새마을운동,등 수많은 액자와 건물 초석· 현판 등을 남겼다. 그의 가짜 작품이 경매에 고가로 나오는 등 폐단도 있었다. 야당 오래했던 3김씨도 서예 작품을 다작했다. 김영삼의 ‘대도무문’·‘무신불립’, 김대중의 ‘경천애인’, 김종필 충성다짐 작품 등이 시중에 상당히 굴러다닌다. 그런데 가장 특이한 건 소위 살인마란 소리까지 듣는 전두환이다. 전씨의 글씨가 정치인 중 상당히 수준이 높다고 한다. 일중 김충현에게 예서체를 독실히 배워 수준에 오른 것으로 보는 평가다. 위 고려무장 최우의 경우도 있었지만,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근대 한국 제일 명필로 알려진 '소전(素荃)손재형(孫在馨)'이 쓴 '' 서예작품 액자다. 청전화실 정면 벽 창틀 위에 걸려 있다. 신축년에 썼으니 올해가 육갑을 한순 돌아 딱 61년 째. 사람으로 치면 환갑인 셈이다. 김영배 기자.▲사족으로 서예 및 동아시아 각국의 서예 교육 실태를 좀 더 살펴본다.주로 한자나 그것과 겸용되어 사용되었던 문자류에 한글 일본 글자, 베트남 글자 등을 창작적으로 쓰는 것이 서예다. 한자는 중국 대륙에서부터 동양 여러 개 국가에서 현재에 이르기 까지 수천 년간 쓰인 문자로, 서예의 역사도 이에 기원한다고 볼 수 있다. 발원지 중국 역사상 최고의 서예가로 손꼽히는 사람은 4세기 동진(東晉)시대 왕희지다. 모든 서체에 발군해 서성(書聖)이라고도 부른다. 난정서라는 작품 글씨가 유명하다.왕희지 이후 당나라 때유명한 서예가로구양순, 안진경, 우세남, 저수량 등이 있다. 구양순의 대표작에는 구성궁예천명, 안진경은 근례비, 우세남은 공자묘당비, 저수량은 안탑성교서비 등이 있다. 당 이후에도 역사의 대를 이은 서예가로서 유공권, 미불, 황정견, 조맹부, 동기창, 유용, 하소기, 옹방강, 등석여, 섭지선, 오창석 등 제씨가 유명하다.한자문화권인 중국, 대만, 한국, 일본, 베트남 등지에서 동시 다발로 발전해 왔다. 과거 사대부들의 필수 소양이던 시서화 중 서가 서예다. 한국에서는 書藝(서예), 중국과 베트남은 書法(서법). 일본에서는 書道(서도)라고 쓴다. 서예라는 단어를 만든 사람도 현대 대표적 서예가 소전 손재형이기도 하다. 한국에도 대학에서 가르치기도 한다. 경기대 장지훈·김혜란의 논문(한국 대학의 서예교육과 교원양성 실태 : 경기대학교를 중심으로) 에 의하면, 한국 서예전공 학과는 1989년 원광대 서예학과의 신설을 기점으로 계명대(1992), 대구예술대(1995), 대전대(1998), 호남대(2000), 경기대(2003)로 이어졌다. 이 서예학과 신설과 부흥은 8개 대학의 대학원 신설로까지 이어져, 약 30년간 2,500여명의 서예전공자가 배출됐다. 이처럼 대학의 서예학과가 신설된 이래 도제식 서예교육과 차별화된 전문교육을 받은 서예전공자가 급증했다. 최근 10년 간 중국은 대학 서예전공 학과가 200여 곳이 신설돼 정부에서 서예교육을 권장하고 의무화하면서 체계적인 초·중등 서예교육의 기반을 마련해나가고 있다. 일본 또한 오래 전부터 초·중학교 서예가 국어교과에 의무화돼 있는 가운데 고등학교에서는 예술계열로 분류되어 서예교육을 심화해 왔다. 베트남도 하노이 탕룽 대학교 등에서 가르치고 있다. 이에 반해 한국은 많은 전공자의 배출에도 불구하고, 의무교육 과정에서 국가적 차원의 서예교육 정책이 부재하다. 한·중·일 가운데 유독 한국만 서예교육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없는 실정이다. 이들 외국과는 상반되게 최근 10년간 한국의 대학 서예학과들은 폐과를 맞으면서 현재는 경기대, 대전대, 호남대 서예학과 정도만 남아 있다고 한다. 외국과는 상반되게 미술교과 내 서예교육에 대한 비중과 중요도가 떨어졌다. 이에 대학의 서예전공자들이 서예교육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나 활로는 서예학과의 활성화에 비해 크게 확장되지 못한 실정이다. 한국 서예 교원은, 대학 서예교원, 학교 서예교원, 기관 서예교원, 학원 서예교원 등으로 크게 분류된다. 대학 서예교원은 대학 서예학과의 교·강사로서 서예전공자의 극소수가 종사하고 있다. 학교 서예교원은 미술교사, 예술강사, 서예강사 등으로 분류되는데 원광대, 호남대 등에서 교직이수를 하거나 교육대학원을 통해 미술교사 자격증을 취득하더라도 서예전공자가 미술교사로 채용되는 일은 극히 드물다. 특히 한국은 ‘서예교사’라는 직위나 명칭 자체가 없기 때문에 서예전공자의 대부분은 예술강사 및 서예강사로 진출해 초·중등 미술교육 내 서예교육과 방과 후 서예교육 등을 주로 담당하고 있다. 그 가운데 경기대 서예학과는 교직이수가 별도로 없기 때문에 졸업 후 서예교육의 현장으로 곧장 투입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다만 서예전공자들이 사회에 진출해 보다 전문적인 서예교육을 실현하기 위해 교과 및 비교과를 통한 서예교육의 활성화방안을 마련해 오고 있다. ▲서예를 통한 국민 정신문화 개조운동은 어떤가?지금은 서예가 사양화 돼 동네마다 있던 서실이 자취를 감췄다. 극도 물질문명 경제사회에서 상실돼 가는 인간성 회복에 예술문화가 핵심이라면 그중에서도 서예문화의 활성화가 관건이 되지 않을까 싶다. 서예는 단순히 글 쓰는 게 아니다.‘서자심지화(書者心之畵)’요, ‘書卷氣文字香(서권기문자향)’이란 말에서 보듯이우선 학문과 인품이 동반돼야 한다. 이 타락무도한 몰지성 시대를 끝내는 명약이나 비법으로써의 서예문화 재림이 절실하지 않나 싶다.청전화숙(靑田畵塾)으로 불리는 곳으로 청전 이상범 화백이 평소 사용하던 화실이다. 여기서 작품활동을 하고 박노수·배렴 등 후대 유명화가를 다수 배출한 유서깊은 곳이다. 김영배 기자.
- 주필실/2021-07-17
![[문화 산책] 한 퇴직 공무원이 걷는 제2의 인생, 문화·예술의 길 엿보다...경찰청 퇴직 채상욱 경감](//www.safedaynews.or.kr/storage/%EC%A0%84%EA%B0%81-%EC%9E%91%ED%92%88.jpg)
- [문화 산책] 한 퇴직 공무원이 걷는 제2의 인생, 문화·예술의 길 엿보다...경찰청 퇴직 채상욱 경감
- 서울경찰청 퇴직자인 채상욱(61) 전 경감이 재직 중 취미·교양 차원 틈틈히 배워 작품으로 지인에게 선물한 전각 작품. 김영배 기자.국가등록문화재 412호인 신당동 박정희 사저 문화재안전관리인 근무를 마치고,종로 소재 화실로 온 지도 사흘이 지났다.이곳 누하동 한옥은50여 년 전에 활동하던 유명한 청전 이상범 화가의 집이다.국가등록문화재171호다.이 엄중한 코로나 시국에도 시민에게 개방 중이다.국가 방역 기간에 이게 잘하는 일인 지는 애매하기도 하다.국민 안전이 더 절대적 명제이기 때문이다.아뭍은 오늘도 기자단 및 몇몇 신문 일 하면서도 후손에게 길이 물려줄 우리 문화재 안전관리인 의무도 다 하고 있다.특이한 건 이번 근무장에서 새로 만난 동료로부터 생각지 못한 귀한 전각 작품을 선물 받았다.낙관에 사용하는 전각(篆刻)이다.그것도 누구나 판독 가능한 수려한 한글 자체라 더욱 의미가 있다.비록 선비의 고아한 필 놓고,세상 질타하는 살벌 철필 든 지 어언20년 이 돼가지만,하동 유림마을에서 자라 초급이나마 한문 읽은 탓에 소년시절부터 동양학에 심취했고,초기단계 서화 섭렵도 했지만,이 전각 공부까진 들어가질 못했기에 감회가 새롭고 남다른 바 있다.자랑스런 대한민국 공무원으로서 33년 이상을 애국충정으로 초지일관하면서, 성실한 가운데서도 무사고로 봉직해야 서훈하는 까다로운 훈장(옥조근정) 수훈자인 채상욱 경감=채상욱 카톡에서 갈무리, 김영배 기자.전각 제작해 준 작가는 특이한 이력 소유자다. 서울경찰청에서 경찰관으로 정년 마친 채상욱(60)전 경감이다.그는 33년 이상을 현직에서 근무 후 선정이 까다로운 대한민국 국가 훈장을 수훈하고 최근 마포 경찰서에서 퇴직했다. 공직을 나오자마자 국민안전에서 문화재안전 수호로 임무 전환해 충만한 사명감으로 헌신 기여코자 이곳에 왔다. 이는 마치필자와도 흡사한 과정이다. 필자도 현직 땐 국가안보, 나와선 국민안전 현장에서 뛰고 있으니.필자도 현직 때 그랬지만,상당수 공직자가 재직 중에 취미생활이나 교양활동 차원에서 문학 예술 스포츠 등등에 심취하기도 한다.이는 물론 퇴직 후에까지도 이어질뿐더러 사람과 노력에 따라 상당한 전문가 수준에까지 이르기도 한다.채 경감의 경우는 색소폰,전각 등에 심취해 공부가 상당하다고 알려졌다.오랜 기간 통제받는 생활로 고생한 사람들이 퇴직 후 골프치고 노는 것도 좋겠지만, 이처럼 문화·예술 활동과 봉사활동 하는 것이 보다 건전하고 바람직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유가에 내려오는 성현의 옛말 "행유여력이면 즉이학문"보다 "즉이 취미·봉사활동"의 시대라고나 할까.서울경찰청 퇴직자인 채상욱(61) 전 경감이 재직 중 취미·교양 차원 틈틈히 배워 제작해 기증한 전각 작품. 한글 작품이라 의미가 더 있다. 김영배 기자.전각에 대해 기억을 환기해 한 번 더듬어 보면,전각(篆刻)은 문자의 아름다움을 나무,돌,금옥 등에 도장으로 새기는 예술로 정의 된다.또 다른 비슷한 것으론 전각(塡刻)이 있다.이것은 조선시대 성인 표시인 호패를 만들 때 성명을 파서 새긴 후 채색 물질로 메꾼 것을 이른다.이 전자(前者) 전각(篆刻)은 오늘날 까지 내려오는 예술작품으로써 동양의 서화(書畵)에서 없으면 안 될 정도로 중요한 도구이자, 그 자체가 수준 높은예술품이다.서화가 아무리 잘 그려졌고 쓰여졌다고 해도 전각 낙관이 찍혀 있지 않으면 미완성 작품으로 인식되기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서화 작품엔 낙관(落款)이란 말이 있다.낙성관지(落成款識)의 준말이다.어떤작가든 작품 완성 후엔 저작자'표시(表示)'를 하게 되는데,서양식 유화 등은 사인(Sign)으로 통용되나,동양의 서화에서는'낙관'이란 용어로 불린다.도장 자체를 말함이 아니고,서명 날인 하는 행위 과정이 낙관이고, 이에 사용되는 도장이 전각(篆刻)이다.주로 한자 전자체(篆字體)를 많이 쓰기에 전각이란 명칭이 된 것으로 이해된다.근래 유명 금석·전각가는 중국 청대 옹방강,등석여 등이 있고 한국은 추사 김정희,근대 한국엔 성재 김태석,위창 오세창 등이 널리 알려져 있다.근대 한국 전각 대가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네이버에서 갈무리. 김영배 기자.
- 주필실/2021-07-04
![[문화 산책] 한 퇴직 공무원이 걷는 제2의 인생, 문화·예술의 길 엿보다...경찰청 퇴직한 채상욱 경감](/storage/전각-작품.jpg)
- [문화 산책] 한 퇴직 공무원이 걷는 제2의 인생, 문화·예술의 길 엿보다...경찰청 퇴직한 채상욱 경감
- 서울경찰청 퇴직자인 채상욱(61) 전 경감이 재직 중 취미·교양 차원 틈틈히 배워 작품으로 지인에게 선물한 전각 작품. 김영배 기자.국가등록문화재 412호인 신당동 박정희 사저 문화재안전관리인 근무를 마치고, 종로 소재 화실로 온 지도 사흘이 지났다. 이곳 누하동 한옥은 50여 년 전에 활동하던 유명한 청전 이상범 화가의 집이다. 국가등록문화재 171호다. 이 엄중한 코로나 시국에도 시민에게 개방 중이다. 국가 방역 기간에 이게 잘하는 일인 지는 애매하기도 하다. 국민 안전이 더 절대적 명제이기 때문이다.아뭍은 오늘도 기자단 및 몇몇 신문 일 하면서도 후손에게 길이 물려줄 우리 문화재 안전관리인 의무도 다 하고 있다. 특이한 건 이번 근무장에서 새로 만난 동료로부터 생각지 못한 귀한 전각 작품을 선물 받았다. 낙관에 사용하는 전각(篆刻)이다. 그것도 누구나 판독 가능한 수려한 한글 자체라 더욱 의미가 있다. 비록 선비의 고아한 필 놓고, 세상 질타하는 살벌 철필 든 지 어언 20년 이 돼가지만, 하동 유림마을에서 자라 초급이나마 한문 읽은 탓에 소년시절부터 동양학에 심취했고, 초기단계 서화 섭렵도 했지만, 이 전각 공부까진 들어가질 못했기에 감회가 새롭고 남다른 바 있다. 자랑스런 대한민국 공무원으로서 33년 이상을 애국충정으로 초지일관하면서, 성실한 가운데서도 무사고로 봉직해야 서훈하는 까다로운 훈장(옥조근정) 수훈자인 채상욱 경감=채상욱 카톡에서 갈무리, 김영배 기자.전각 제작해 준 작가는 특이한 이력 소유자다. 서울경찰청에서 경찰관으로 정년 마친 채상욱(60) 전 경감이다. 그는 33년 이상을 현직에서 근무 후 선정이 까다로운 대한민국 국가 훈장을 수훈 한 후 최근 마포 경찰서에서 퇴직했다. 공직을 나오자마자 국민안전에서 문화재 안전 수호로 임무 전환해 충만한 사명감으로 헌신 기여코자 이곳에 왔다. 이는 마치필자와도 흡사한 과정이다. 필자도 현직 땐 국가안보, 나와선 국민 안전 현장에서 뛰고 있으니.필자도 현직 때 그랬지만, 상당수 공직자가 재직 중에 취미생활이나 교양활동 차원에서 문학 예술 스포츠 등등에 심취하기도 한다. 이는 물론 퇴직 후에까지도 이어질뿐더러 사람과 노력에 따라 상당한 전문가 수준에까지 이르기도 한다. 채 경감의 경우는 색소폰, 전각 등에 심취해 공부가 상당하다고 알려졌다. 오랜 기간 통제받는 생활로 고생한 사람들이 퇴직 후 골프치고 노는 것도 좋겠지만, 이처럼 문화·예술 활동과 봉사활동 하는 것이 보다 건전하고 바람직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유가에 내려오는 성현의 옛말 "행유여력이면 즉이학문"보다 "즉이 취미·봉사활동"의 시대라고나 할까. 서울경찰청 퇴직자인 채상욱(61) 전 경감이 재직 중 취미·교양 차원 틈틈히 배워 제작해 기증한 전각 작품. 한글 작품이라 의미가 더 있다. 김영배 기자.전각에 대해 기억을 환기해 한 번 더듬어 보면, 전각(篆刻)은 문자의 아름다움을 나무, 돌, 금옥 등에 도장으로 새기는 예술로 정의 된다.또 다른 비슷한 것으론 전각(塡刻)이 있다. 이것은 조선시대 성인 표시인 호패를 만들 때 성명을 파서 새긴 후 채색 물질로 메꾼 것을 이른다. 이 전자(前者) 전각(篆刻)은 오늘날 까지 내려오는 예술작품으로써 동양의 서화(書畵)에서 없으면 안 될 정도로 중요한 도구이자, 그 자체가 수준 높은예술품이다. 서화가 아무리 잘 그려졌고 쓰여졌다고 해도 전각 낙관이 찍혀 있지 않으면 미완성 작품으로 인식되기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서화 작품엔 낙관(落款)이란 말이 있다. 낙성관지(落成款識)의 준말이다.어떤 작가든 작품 완성 후엔 저작자 '표시(表示)'를 하게 되는데, 서양식 유화 등은 사인(Sign)으로 통용되나, 동양의 서화에서는 '낙관' 이란 용어로 불린다. 도장 자체를 말함이 아니고, 서명 날인 하는 행위 과정이 낙관이고, 이에 사용되는 도장이 전각(篆刻)이다. 주로 한자 전자체(篆字體)를 많이 쓰기에 전각이란 명칭이 된 것으로 이해된다. 근래 유명 금석·전각가는 중국 청대 옹방강, 등석여 등이 있고 한국은 추사 김정희, 근대 한국엔 성재 김태석, 위창 오세창 등이 널리 알려져 있다.구한 말 전각 대가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네이버에서 갈무리. 김영배 기자.
- 주필실/2021-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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